신심은 부처님의 깨달음의 세계를 믿고 인과법을 믿고 중생의 불성을 믿고 성불을 믿는 것이다. 이같은 신심은 지혜심, 자비심, 서원심의 보리심을 일으키게 한다. 이를 발심이라 일컫는다. 또한 신심이란 말은 발심까지를 포함한 의미로 쓴다. 교훈에서 정한 신심도 발심을 내포한 개념의 신심이다. 이러한 신심은 불심을 자기화 하는 것이다.
   

불교의 교육과정은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과 문사수(聞思修) 삼혜(三慧)를 닦게 한다. 이해와 실천을 겸하게 하는 것이다.『화엄경』의「입법계품」에서도 배움과 닦음에 대해서 질문을 거듭하고 있다. 참학도 배움과 닦음의 의미이다. 참학을 깊게 하면 불교의 도업(道業)을 성취하게 된다. 폭넓은 배움과 진실한 닦음을 통하여 선지식의 인격을 갖추게 하는 것이 승가교육의 목표이기 때문에 참학을 교훈으로 정하게 되었다.
   

중생에게 공경할 수 있는 것은 일체중생이 모두 부처님과 동일한 불성을 가지고 있고 미래에 성불할 수 있기 때문이다.『법화경』,「상불경보살품」에서는 성별과 신분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나는 그대를 존경합니다. 그대는 성불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으며,『금강경』,「육조의해」에는"색신(色身)만 보면 중생에게 보경(普敬)할 수 없고, 법신(法身)을 보면 중생에게 보경(普敬)할 수 있다."는 법어가 있다. 이처럼 보경은 불심으로 중생을 대하는 행위이며 이타행의 시작이다. 중생사회에서 불심공동체를 형성하는 기본이 보경심이다.
   

대승불교의 이념은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 발심수행하며,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 성불한다.『화엄경』,「비로자나품」에는"부처님께서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정각을 이루었다.(爲利衆生成正覺)"는 말씀이 있다.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라는 말은"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爲度衆生)"란 말과"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爲化衆生)"라는 말과도 같은 의미이다. 모두가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는 서원이며, 중생을 이롭게 하는 공덕의 회향이다. 이타행의 궁극 이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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